2026. 07. 05.

공경철 교수의 『로봇의 미래』, 넘어져도 다시 걷는 이유

이혜성의 1% 북클럽|2026. 07. 05.

오늘 나눌 이야기의 주인공은 웨어러블 로봇 기업 엔젤로보틱스를 만든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다. 그는 국제 대회 사이배슬론에서 두 번 연속 금메달을 딴 로봇 공학자이면서, 최근에는 『로봇의 미래』라는 책을 펴낸 저자이기도 하다. 로봇이라는 차가운 기계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핵심 이야기

공경철 교수가 만드는 로봇은 아이언맨처럼 입는 로봇, 즉 웨어러블 로봇이다. 그가 창업한 회사의 미션은 인간 능력의 회복, 유지, 증강, 초월 네 단계로 정리된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돕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한계 자체를 넘어서겠다는 목표다. 그런데 이 대화에서 정작 가장 오래 머문 주제는 기술의 원리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였다.

사이배슬론이라는 국제 대회에서 그의 팀은 동메달, 금메달, 그리고 대회 규정과는 무관한 도전까지 세 번의 대회를 거치며 계속 다른 것을 배웠다.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배웠다는 점이 이 이야기의 축이다.

그리고 그는 로봇이라는 기술의 뿌리를 파고들면서, 결국 로봇을 먼저 상상한 건 공학자가 아니라 소설가와 애니메이터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기술은 늘 그 상상력을 뒤늦게 따라간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

아이언맨을 꿈꾸던 마음, 웨어러블 로봇이 되다

어릴 때 보았던 옛날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사고로 장애를 얻고 신체 보조기를 착용하다가, 어느 순간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존재가 된다. 공경철 교수는 그 장면에서 느낀 인상이 지금의 연구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로봇 공학에 대한 관심과 인체 능력 증강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그래서 그의 회사가 내세우는 목표는 회복을 넘어 초월까지다. 다치거나 나이 든 몸을 돕는 보조기가 아니라, 언젠가는 인간의 물리적 한계 자체를 확장하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방향이다.

사이배슬론, 넘어져도 다시 걷는 이유

사이배슬론은 원래 '사이보그 올림픽'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대회로, 장애가 있는 선수가 기술을 이용해 겨루는 자리다. 4년마다 스위스에서 열리고,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로봇을 입고 의자에 앉고 서기, 좁은 길 통과, 계단 오르내리기 같은 일상 동작을 해내는 종목도 있다. 첫 대회에서 이들은 동메달을 땄지만, 결승선을 앞두고 선수가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공경철 교수는 그 순간을 공학자로서의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선수는 다시 일어나 한 걸음씩 걸어갔고, 이미 순위와 상관없이 관중과 방송사 모두가 그 장면에 집중했다. 두 번째 대회에서는 완벽하게 준비해 금메달을 땄고, 세 번째 대회에서는 아예 순위를 포기하고 휠체어에서 혼자 로봇을 입을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 대회 점수와 무관했던 그 도전이 오히려 심사위원 특별상으로 이어졌다.

로봇을 낳은 건 실험실이 아니라 소설이었다

공경철 교수는 로봇이라는 개념 자체가 1921년 체코의 희곡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짚는다. 그 뒤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일본 애니메이션 아톰이 이어지며 로봇에 대한 상상이 계속 모습을 바꿔왔다. 미국이 정의하는 로봇은 철저히 실용적인 자동화 시스템에 가깝고, 일본의 로봇은 늘 사람이나 친숙한 존재를 닮아야 한다. 나라마다 로봇의 정의가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로봇이 문화의 산물이라는 증거라는 것이다.

아톰이 로봇을 무섭지 않은 친구로 그려낸 뒤, 터미네이터가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켰고, 빅히어로의 베이맥스가 다시 로봇을 푹신하고 다정한 존재로 되돌려 놓았다. 아이언맨은 웨어러블 로봇을 다시 대중의 중심 화두로 불러왔다. 결국 공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만드는 건, 오래전 어릴 때 보았던 이야기를 현실로 옮기려는 시도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K-콘텐츠 강국, 다음 로봇 문화를 이끌 차례

공경철 교수는 최근 로봇 산업에서 참고할 만한 문학과 영화적 상상력이 점점 고갈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금까지는 미국과 중국이 만든 영상 콘텐츠를 각국 공학자들이 뒤따라가는 흐름이었지만, 그 소재가 서서히 바닥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화를 이끄는 쪽이 결국 기술을 이끄는 쪽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이미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자리잡은 만큼, 뒤처진 기술력에 집착하기보다 잘할 수 있는 문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음 로봇 문화를 리드할 기회가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로봇과 함께 사는 법, 일자리보다 중요한 것

로봇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우려에 대해, 공경철 교수는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많다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라면서도, 정작 중요한 건 통계가 아니라 내 일자리가 사라졌을 때의 현실이라고 짚는다. 다만 하나의 일자리가 생기고 사라지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가 건네는 메시지는 하나다. 지금 하는 일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보다,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여유와 융통성을 가지는 쪽이 결국 기회를 더 많이 열어준다는 것이다. 코딩을 몰라도 AI의 도움으로 코드를 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처럼, 진입 장벽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걷는다는 것, 로봇과 함께 사는 삶

대화의 끝에서 그는 책의 한 구절을 직접 옮겼다. 로봇 산업의 미래는 판타지와 기술, 이 두 영역 사이의 건전한 공존과 균형에 달렸다는 문장이었다. 판타지는 방향과 영감을 주고, 기술은 그 꿈을 현실로 옮긴다. 꿈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균형이야말로 로봇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힘이라는 말로 대화는 마무리됐다.

결승선 앞에서 넘어졌다가 다시 한 발씩 내디딘 선수의 이야기와, 소설과 애니메이션 속 상상이 결국 기술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었다. 넘어져도 다시 걷는 것, 낡은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것. 결국 로봇의 미래를 만드는 건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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