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본으로 다시 만난 『죄와 벌』
어릴 때는 청소년용으로 간추려진 『죄와 벌』을 읽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죄와 벌·백치·악령·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국내 유일하게 완역한 김정아 박사의 한정판 번역본으로 원문을 제대로 읽게 됐다는 이야기로 영상은 시작한다. 30만 원에 가까운 가격이지만, 좋아하는 분야의 한정판에는 돈을 아끼지 않듯 평생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라는 두 거장 중, 먼저 안나 카레니나로 톨스토이에 입문시켜 준 박현 작가의 권유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보다 죄와 벌을 먼저 읽었다. 상대적으로 짧고 덜 어려운 죄와 벌 쪽이 지금의 자신에게 더 맞았다고 말하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먼저 입문했다면 도망가고 싶었을 거라는 솔직한 소감도 덧붙인다.
핵심 이야기
『죄와 벌』은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라, 평범한 대학생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그 동기를 끝까지 추적하는 심리 소설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줄거리를 다 알고 나서도 다시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라는 것 — 결말을 안다는 게 매력을 전혀 반감시키지 않는 드문 작품이라는 점을 짚는다.
영상은 이 소설을 다섯 개의 키워드로 정리한다. 동기를 알 수 없는 살인, 야윈 암말의 꿈, 살인자와 매춘부의 만남, 그리고 소설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하는 문장인 '변증법 대신 삶'. 이 표현 하나가 소설 전체를 아우른다고 설명하며, 관념과 이론에 갇혀 있던 한 청년이 결국 살아 있는 삶 쪽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따라간다.
여기에 더해,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28살에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 직전 극적으로 감형된 뒤 시베리아 유형을 거쳐 이 작품들을 썼다는 삶의 배경, 그리고 니체·아인슈타인·프로이트가 그에게 보낸 찬사까지 함께 다룬다.
주요 내용
동기를 알 수 없는 살인

23살 대학생 라스콜니코프는 노파의 집을 미리 답사하고 도끼를 준비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4층 집을 오가며 방문자들과 마주칠 뻔한 장면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자세히 묘사되어, 초반부는 범죄 스릴러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정말 이상한 건 범죄 이후다. 분명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스스로 고백하면서도, 정작 훔친 금품은 거의 쓰지 않고 어딘가에 묻어둔 채 잊고 싶어 한다. 이 모순이 바로 소설이 파헤치는 질문 — 평범한 청년은 대체 왜 살인을 저질렀는가 — 으로 이어진다.
야윈 암말의 꿈

살인 이후 라스콜니코프는 어린 시절 목격한 장면을 꿈에서 다시 마주한다. 술 취한 사람들이 짐을 다 실은 마차를 끌게 하려고 야윈 말을 채찍질하다 결국 쇠막대로 때려죽이는 장면인데, 그 자리에서 어린 라스콜니코프만이 말을 끌어안고 울며 항의했었다.
겉으로는 차갑지만 원래는 남을 향한 연민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 꿈이 보여준다. 그런 그가 두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자가 되었다는 대비가, 소설이 그리는 인간 심리의 복잡함을 드러낸다.
살인자와 매춘부의 만남

단어만 놓고 보면 최악의 조합처럼 들리지만,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 스스로를 함부로 내던져 버렸다는 것. 소냐를 향한 감정도 이성적 사랑이라기보다는,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며 "모든 인류의 고통 앞에 절을 한 것"이라 말하는 순간에 가깝다.
이 장면을 두고 영상은 분명히 짚는다. 살인자를 따뜻하게 그렸다고 해서 그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한 것은 전혀 아니라고.
변증법 대신 삶

라스콜니코프는 생각과 이론에만 갇혀 살던 대학생이었다. 나폴레옹처럼 비범한 사람은 사람을 죽여도 영웅으로 추앙되지 않느냐는 극단적 논리로, 자신도 그런 특별한 존재인지 시험해보려 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범죄 이후 그는 철저히 무너져 내린다. 겉으로는 선행을 베풀면서도 스스로 파멸해가는 스비드리가일로프라는 인물이 그 곁에서, 결과가 모든 걸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비추는 거울처럼 등장한다.
사형대에서 살아난 작가의 생애
도스토옙스키는 28살에 혁명 모임에 드나들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고, 눈이 가려진 채 총살을 기다리던 순간 극적으로 황제의 특사를 받아 감형된다. 이후 시베리아에서 몇 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서야 죄와 벌을 비롯한 4대 장편을 차례로 써냈다.
니체는 그를 "내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 아인슈타인은 "가우스보다도 더 많은 걸 준 사람", 프로이트는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자리를 차지한다"고 평했다는 일화로 그의 삶과 문학의 무게를 전한다.
마무리
영상은 4대 장편을 10년에 걸쳐 완역한 김정아 박사와의 인터뷰를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다는 예고로 끝난다. 완독한 줄거리를 알면서도 다시 펼치고 싶어지는 소설이라는 말처럼, 이 영상 역시 죄와 벌을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미 읽은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입구가 되어줄 듯하다.